1년 6개월간의 농촌생활(2)

‘가짜육쪽마늘을 잡아라’ 007작전

이 참에 국세청을 비롯한 우리 세무관서(특히 시골 세무서)의 위상에 대해 필자가 당시 느꼈던 소감을 이 지면을 빌어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국세청이나 지방국세청이라 하면 납세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겠지만 관청이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세원이 아주 빈약한 시골 3급지 세무서 같은 경우에는 세금에 대한 관심이 적은 데다가 관할 세무서장들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해 아예 세무서를 무시해 버리는 경향들이 적지 않았다.

지역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기관장 모임이나 각종 행사를 할 때 정해지는 의전 서열(?)에서 일반 관공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반 민간단체보다 밀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필자의 경우에도 의성세무서장으로 부임하자, 지역에서는 “이번 세무서장은 과연 얼마나 있다 갈까?”라고 수군대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필자보다 먼저 거쳐간 전임 서장들도 다른 기관장들과는 별로 많은 접촉을 하지 않았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이곳 검찰청에서도 세무서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어떤 때는 별로 큰 사건이 아닌 데도 세무공무원이라 해서 구속을 시킨 일이 더러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장께서도 필자에게 특별히 이 점을 당부하셨다. 필자는 부임하자마자 최우선적으로 관내 유관 기관과의 소통문제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썼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지역 납세자들도 덩달아 세무서의 협조 요청에 잘 따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 중 몇몇은 마치 자기가 이 지역 골목대장(?)인 것 같이 으스대면서 세무 공무원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어떤 납세자는 특히 심했다. 과거 경찰 간부 출신이라고 뽐내면서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무려 20여차례나 일부러 체납해 온 사람이었다. 세금을 안 내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다니면서도 자기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있으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 사람을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담당 계장이 나에게 보고하면서 이 사람은 전형적인 상습 국세체납범이니 가만히 두어서는 세정을 펴 나가는데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필자는 몹시 화가 났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다니도록 놓아 주었는지…. 한마디로 이것은 지금까지 필자를 비롯해 그동안 이 곳을 거쳐갔던 전임 세무서장 모두의 책임이었다.

그래서 담당 계장으로 하여금 즉시 조세법처벌법에 의한 ‘상습 국세체납범’으로 검찰에 고발조치토록 했다. 그리고 필자가 직접 검찰청에 가서 고발인 진술을 했다. 국가 공권력을 우습게 아는 사람으로 가만히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강하게 이야기 했더니 검찰지청장과 담당검사도 수긍하면서 바로 구속시켜 버렸다.

이런 사건이 관내에 알려지자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필자에게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인맥이 보통이 아니어서 자칫하면 세무서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때는 그 아들이 나에게 협박전화를 했지만 나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상습체납자는 재판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밀렸던 세금도 모두 완납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직속 상관인 대구지방국세청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더니 우리 세무행정에 좋은 수범사례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격려도 해 주셨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의성세무서가 생기고 처음 있는 사건이라 혹시나 우리 직원들이 다치지 않을까 하고 속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가자 지역내 다른 납세자들이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였으며 세금을 체납한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밀린 세금을 내게  됐다.

또 이 참에 한가지 더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도 ‘의성육쪽마늘’하면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이 지역 특산물인데 서울에서는 가짜 의성육쪽마늘이 너무 많다는 정보가 나에게 들렸었다. 이곳에서 생산한 육쪽마늘 수량보다 서울에서 팔리는 수량이 10배 가량이나 많다는 것이란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세무서 전 직원을 총동원해서 007 작전을 폈다. 참고로 이곳 의성읍으로 들어오는 길목이 2〜3개밖에 없는데 직원들 모두 밤샘근무를 시켜 길목마다 우리 직원들이 지키게 했다. 그리고 이 지역으로 들어오는 타 지역에서 생산한 마늘을 실은 화물차를 샅샅이 조사시켰다. 그랬더니 경상남도나 전라도 지역 등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마늘이 이 지역으로 몰래 들어와 갑자기 의성 육쪽마늘로 둔갑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의성세무서에서는 여기에 가담한 관내 마늘 판매업자들에 대해 엄중한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확인 결과 이들이 자기 상호를 빌려주는 대가로 상당액의 수수료를 챙겼거나 아니면 이들이 직접 그런 장난질(?)을 한 것도 확인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불러 “당신들의 고향 특산품은 당신들이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특별 정신교육도 시켰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이들이 빼먹은 세금만 추징한 후 풀어주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의성 군수에게도 보내 앞으로 사후관리를 잘하라고도 했다.

이렇게 이곳 의성을 위한 올바른 지역세정을 폈더니 의성세무서의 위상이 한껏 올라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군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나 지역 유지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크게 칭찬해 주었다.

“이번 의성세무서장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한 칼 쓰는 사람이네! 진짜 군수 출마해도 되겠네”

97년 12월말, 정든 이 곳을 떠날 때 군수를 비롯한 많은 기관장들과 지역 유지분들이 찾아와 눈물어린 환송을 해 줘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매주 水·金 연재-

[연재]'나는 평생 세금쟁이'(36)<2015.03.13>[세정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