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성은 나눔과 섬김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
동대문 용산 본사 천안
회사소개
  • HOME
  • >
  • 석성은?
  • >
  • 나눔과 섬김의 세상
 
작성일 : 15-04-30 16:10
[연재]“국세청 공보관, 半 기자 半 세금쟁이로 분투”<2015.04.29>[세정신문]
 글쓴이 : 세무법인석성
조회 : 2,687  

‘깨끗이 쓰다 물려줄 것이 있다네’

필자가 공보관으로 자리한지 한달 후, 드디어 국세청은 언론사들과의 한판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불행히도 필자는 그 전쟁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동서남북 어디를 돌아봐도 도와 줄 사람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된 채로 말이다.

그 때 필자는 공보관으로 발령받기 직전에 안정남 국세청장께서 “공보관 그 자리, 어려울텐데….”라며 몇번씩이나 반복하면서 횡설수설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는가?

여기에다 언론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출입기자 사이에서 허수아비 공보관으로 이미 낙인까지 찍혀버렸으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당장 저녁마다 출입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도 어울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여기에다 못 마시는 술까지 마셔야 했으니 정말 괴로운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에게 내 신세를 한탄했더니 “자네답지 않게 무슨 소리를 하느냐?”라고 오히려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괴로웠다.

그래서 며칠간 교회 새벽 예배에 참석해서 지혜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울러 지나온 내 자신의 삶을 조용히 되돌아 보는 시간도 가졌었다. 약관 20세 나이에 말단 9급 세금쟁이로 출발하여 30여년 동안 숱한 어려운 고통의 순간들을 거쳐 어렵게 공보관 자리까지 올라 왔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좌절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나름대로의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앞으로 더 어려운 태산 준령들이 밀려올 텐데, 어쨌던 가는 데까지 가보자,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하나님께서도 나와 함께 해 주실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나니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즈음에 우리 집에는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삼수(三修)를 하고 있는 아들의 대학 진학 문제였다. 늘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그 문제가 그때 기적적으로 해결되었다.


 
누군가가 ‘다마호사(多魔好事)라고 했던가? 그 때부터 필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반기자(半 記者), 반 세금쟁이(半 公務員)’ 신분으로 몸을 던져 가며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출입기자는 물론, 언론사 간부들에게도 내 진심을 보여주었다. 또 밤마다 기자들과 함께 하는 회식자리에도 부담없이 참석하여 함께 어울렸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었다. 이 시간을 빌어 개인적으로 고백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놈(?)의 술 때문에 그동안 우리 집이 망가되지 않았던가…. 장남인 형이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젊디 젊은 52세 나이에 중풍으로, 여기에다 84년 말에는 아버지마저 식도암으로 돌아가셨으니….
그래서인지 몰라도 필자는 술 문제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민감했으며 철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직책이 공보관이다 보니 이를 피해 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 때 마침 내 머리에 번뜩이는 하나(?)가 있었다. 바로 1년전에 ‘(사)사랑의 장기 나눔운동본부’에서 시행했던 장기기증식에 참가해서 장기를 기증하기로 서약한 일이 있었다.

향후 교통사고 등으로 뇌사상태가 되거나 죽음에 이를 경우 장기와 안구 그리고 뼈까지도 가져갈 수 있도록 서약하고 받은 ‘장기 기증확인서’를 항상 내 지갑에 넣고 다녔었는데 바로 그것이 생각났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모자도 깨끗이 쓰고 교복도 깨끗이 쓰다 물려주고, 책도 그렇게 물려 주었는데 지금도 깨끗하게 쓰다 물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네.”

그러면서 내 지갑에 넣어 두었던 ‘장기기증확인서’를 함께 한 출입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많은 기자들이 “야! 이것은 진짜네”하면서 매우 놀라워했다. 그 이후부터 그들이 필자에게는 함부로 술을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미안스러워 몇잔씩 마셔 주었더니 그 기자들이 되려 마시지 말라고 만류를 했다.

그러면서 “공보관님! 우리가 도와 줄 테니 깨끗하게 쓰십시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다정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 때 그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그 기자들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중견 간부들이 되어 있다.

“사랑하는 아우들아! 잘들 지내지? 언제 회식 한번 하세나. 그리고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지금도 나는 깨끗이 쓰고 있다네”

-'나는 평생 세금쟁이'-(46)

<계속>-매주 水·金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