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공보관인지 ‘청년’공보관인지?

정부의 어느 부처(部処)이든지 간에 ‘공보관’이란 자리는 대개 1년 정도 맡는 것이 관례다. 길어야 1년6개월을 넘지 않는다. 다른 직책에 비해 힘들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필자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언론사와의 살벌한 전쟁 중에서 1년8개월을 지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을 때 23개 중앙언론사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해서 무려 5천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하고 여기에다 5〜6개 언론사 및 사주까지 검찰에 고발해 버린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큰 일들을 치루었으니 그 고통이야 오죽했으랴….

여기에다 국세청 공보관과 비슷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는 여의도를 관할하는 영등포세무서장 자리 7개월을 포함하면 무려 2년 이상을 공보관으로 지내 온 셈이었다.

그렇다고 내 스스로를 자랑하고 싶어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평생 세금쟁이 생활 중 가장 어려우면서도 보람도 있었던 시간이라는 뜻으로 표현하고 싶은 심정임을 밝히니 오해 없기 바란다.

아울러 지금 고백하지만 그 어려운 공보관 자리에 있으면서 나는 소중한 시간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재(私財)까지 털어야 했었다. 당시 필자가 살고 있던 강동구 상일동 빌라를 처분하여 그 일부를 갖다 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공보관 직책에 올인(All-in)을 한 셈이었다.

남들은 이런 필자를 보고 비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는 간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와도 많이 갈등했으니 말이다.

“당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뭐예요?”
“여보, 미안해….”

그럼에도 당시 필자는 한가지 마음밖에 없었다. 국세청이 이 어려운 난국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기만을 염원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접촉하는 출입기자들과 서로의 고충을 여과 없이 나누는 것이었다. 1박2일간의 기자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라던지 가끔 한적한 데서 세미나를 마련해 준다던가 아니면 매년 한차례씩이라도 일주일 정도의 해외 시찰 기회를 마련해 주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했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우면 심지어 한국세무사회까지도 동원했다.

남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일들을 해 보면서 필자도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평소 우리 세금쟁이들은 직업 특성상 거두어 들이는 것에는 익숙해 있지만 베풀거나 섬기는 것에는 비교적 인색하다고들 이야기한다.

물론 필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2년 가까운 공보관 직책을 겪으면서 그런 편향된(?) 내 자아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또 무엇보다 그 때 사귀었던 젊은 기자들을 비롯해 단순한 성격들을 가진 언론인들을 만나 소중한 인간관계를 맺어오다 보니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시간을 빌어 다시 한번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다. 존경받는 리더십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인생 후반전을 보다 아름답고 윤택하게 살고 싶은가? 공보관 자리를 한번쯤 거쳐 보게나. 안 되면 빽이라도 써서 그 자리를 한번쯤 경험해 보시게나.

이렇게 감히 강권하는 이유는 필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자질도 능력도 부족했었지만 그들이 내 주위에 있어 주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시간은 흘러 2002년 늦은 여름. 드디어 필자는 공보관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2년 가까운 세월이었지만 느낌으로는 4〜5년을 근무한 것 같았다. 늦은 여름 어느 날 그동안 정들었던 출입 기자들이 특별한 송별회 자리를 마련해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주었다.

그 때 출입기자단에서 만들어 준 감사패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한국일보에서 출입하던 김정곤 기자(지금은 정치부장)가 그들을 대표해서 감사패 내용을 읽어 주었다.

“조용근 공보관님! 다사다난했던 1년8개월 동안 선진세정의 막중한 임무를 다하면서도 언론 발전을 위해 헌신을 다 하신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젊은 기자들을 친동생처럼 격려해 주고, 정겹게 대해 주신 당신은 진정 영원한 청년 공보관입니다. 2002. 9. 국세청 출입기자단 일동”

그 때 나는 당황했다. 경상도 출신인 김 기자가 읽어주는 감사패 내용 중에서 ‘당신은 영원한 청년 공보관’이라는 문구를 ‘영원한 청렴 공보관’이라는 말로 들렸다. 나는 그만 손사래를 쳤다.

“여보게들. 미안하지만 나는 청렴 공보관은 절대 아니네. 그래서 나는 이 패를 받을 수가 없다네, 나는 정말 청렴한 공직자가 아니야.”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좌중에서는 떠나갈 듯이 폭소가 터져 나왔다.
지금도 나는 그 때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김정곤 부장! 자네 지금도 사투리 쓰고 있나? 표준말 좀 쓰게나. 영원한 ‘청렴 공보관’이 아니라, 영원한 ‘청년 공보관’으로 읽어 주게.”                             

-'나는 평생 세금쟁이'- (52)
<계속> -매주 水·金 연재-

-한국세무사회장 선거가 종료됨에 따라 본 연재를 재개합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