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ㆍ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참석자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 의장,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당의 지방일정으로 불참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부분 연동형' 방식 선거제 개편에 잠정 합의했지만 각 당 내부에서 이견이 제기되고 있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논의가 성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을 중심으로 당 내부에서 선거제 개편 잠정 합의안 관련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당 일부 의원들은 다른 법안들과 연계해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자체를 반대하고 있으며, 평화당도 호남 의석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의원정수 300석으로 굳힌 더불어민주당 안에 반발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야 4당의 합의안이 나오기도 전에 다른 법안들과 함께 패스트트랙 지정 논의가 있었다. 그만큼 각 당의 입장차가 첨예해 합의가 어려운 법안으로 평가된다.

◆ 지난한 논의과정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각 당에 배분하는 방식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권과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도입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사표를 방지하고 비례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고 홍보했지만 현재 300석인 국회 정원에서 253석인 지역구를 축소 재편하는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역구를 줄이지 못한 채 비례대표를 늘린다면 결국 전체 의원 정수가 증가하는데, 이는 또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러자 문희상 국회의장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동결하면서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결국 민주당은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75석으로 늘리되 50% 연동형으로 하자는 개편안을 내놨다. 이에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을 중심으로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 좁혀지지 않는 간극
바른미래당은 민주당 안에 표면적으로 동의했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김관영 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 안대로)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고정시켜 놓는 한 75석에 대한 100% 연동형은 불가능하다는 것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비례성을 가장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역점을 두고 협상해나갈 것"이라며 "초과 의석은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 말대로라면 결국 지역구 정원을 더 줄이기는 어려우니 75석의 연동형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에 수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래당 내부에서도 제도에 회의적인 반대파가 적지 않아 당론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평화당은 민주당 안의 핵심인 의원수 300명 동결 방침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선거제 개편 원점 재검토까지 거론되고 있다.

유성엽 평화당 최고위원은 "박주현 의원이 제시한 316석 정원으로 늘리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면서 "300석 이내에서 부분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는 것은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당은 농촌 지역구 축소에 대해서도 적지않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합의의 매개 역할을 하겠다면서 자유한국당의 불참을 비판하고 있다. 한국당은 국민 정서에 반하고 대통령제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전면 반대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미 정의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야3당 국민보고대회'에서 손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연동형', 여론은 의원수 증가 반대, 비례대표제 자체에 부정적
본보는 지난해 12월 24일자 '정치권 핫이슈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민 의견 수렴부터 해야' 기사에서 여론조사 결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국민들이 정확히 모르고 있으므로,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후 문희상 의장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각각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이러한 지적이 쏟아지자 대국민 홍보와 의견 수렴을 거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3개월 가까이 지난 현재 국회 차원의 면밀한 여론 수렴 과정은 없다시피 했다. 여야 3당이 홍보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여론 반응은 시큰둥했다.

14일 여의도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회의원 총 의석수 300석이 '많은 편'이라고 응답한 국민이 67.3%로 조사됐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제안한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및 비례대표제 폐지에 대해서는 '찬성'이 54.0%로 반대 35.4%보다 높았다.

조사 기관에 따라 오차가 있으나 국민이 의원 수 증가에 적극 반대하고, 비례대표제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라는 것은 일관된다.

여야 4당의 논의가 표류하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려면 의원 정수 확대가 전제돼야 하는데, 여론의 반대가 심해 역풍을 우려하는 여야 4당이 300명이라는 자리에 억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끼워맞추려다보니 발생하는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 보장과 숙의 민주주의에 따라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 소수정당 의석수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한국 정치 지형 상 정의당, 평화당의 의석이 늘면 국회 내 범진보 세력의 영향력이 증가한다.

민주당으로선 나쁠게 없지만 탄탄한 지역구 기반을 일정부분 다른 진보 정당에 내줄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도 도입에 사활을 건 미래당과 평화당은 향후 제도 도입으로 의석수를 늘려 국회 내 입지를 다지려는 심산이다. 한국당은 지역구 의석이 줄고 정당 지지율에 따른 비례대표가 늘면 입지가 크게 좁아져 제도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각 당의 입장을 떠나서 국민이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데다 여야 4당 사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선거제 개편안을 패스트트랙부터 논의한다는 것이다.

선거제 개편 논의가 숙의 민주주의를 생략한 채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절차적 민주주의 관점에서도 국민 대리권을 행사하는 국회가 과연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 당리당략이 아닌 진정한 뜻으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고 있는지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5선 의원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는 "야당들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하면 국회의원 3분의 1 이상을 비례대표로 뽑는데, 한국당, 민주당 모두 비례대표를 어떤 식으로 뽑았는지 국민은 다 알고 있다"면서 "야합으로 뽑았다"로 비판했다.

이어 "저는 오래 전부터 현재의 정당체질 부패한 정당구조에서 비례대표를 이런 식으로 야합적으로 뽑고 하는 이것은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면서 "정당 체질이 개선되기 전에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서 연동형 비례대표다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